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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강원도의 힘, 강원FC

강원FC의 전남전 5-2 대승이 더욱 의미가 깊은 이유

지난 주말 강원은 모처럼만에 활짝 웃었다. 홈에서 시즌 첫승을 올린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쁜데, 강원FC는 모처럼 공격축구의 진수를 보여주며 5-2 대승을 거두었다. 데뷔첫해 팀 득점 4위에 오르며 공격축구의 대명사로 불렸던, 지난해 명성 그대로를 보여준 완벽한 경기였다.

강원FC는 지난 시즌 전북과의 원정경기에서 5-2 완승을 거둔 데 이어 이번에는 전남에게 5-2로 이겼다. 전라도팀을 상대로 한 이러한 데자뷰 같은 행보에 모처럼 언론과 팬들의 관심도 쏟아졌다. 덕분에 올 시즌 처음으로 프로축구연맹 선정 베스트팀에 뽑히는 경사도 안았다.


승리는 언제나 달콤한 법이지만 이번의 승리가 더욱 남달랐던 까닭은 무승행진의 고리를 끊었다는 사실에 있다.

개막전 0-3 패배를 시작으로 2라운드 서울전 0-3, 3라운드 대전전 2-2, 4라운드 포항전 0-4까지 강원FC에게 있어 승리는 멀고 험한 길 위에 놓여있었다. 무승행진이 계속되자 결국엔 뿔난 팬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더 많이 뛰지 못하고, 예년과 달리 무거워진 선수들의 몸놀림을 지적하던 팬들에게서 급기야는 정신력을 질책하는 목소리까지 터졌다. 하지만 조금의 변명을 덧붙이자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때 아닌 강원도 폭설이 바로 그 이유였다.

지난 2월 17일 쿤밍에서 전지훈련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눈을 뚫고 대관령을 넘어 간신히 강릉에 도착했지만, 그 주를 지나 그 다음주까지 강릉에는 폭설이 쏟아졌다. 경이적인 눈소식 속에 선수들은 잔디 대신 농구코트를 밟으며 실내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는 삽을 들고 나가 직접 잔디 위에 쌓인 눈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당시 김원동 대표이사와 최순호 감독은 선수들을 데리고 눈이 오지 않는 남쪽 지방에서 짧더라도 전지훈련을 다녀올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막전을 치르고 나면 눈소식이 그칠까 싶어 성남전을 마치고 다시 강릉에 복귀했지만, 설상가상이라고 개막전 당일까지 눈이 쏟아졌다. 하마터면 홈 개막전이 취소될 뻔한 우여곡절 속에 개막전을 마쳤지만, 그날로부터 꼬박 3일동안 눈은 계속 쏟아졌다.

하여 다음 홈경기가 춘천에서 열린다는 사실에 착안, 춘천 이동시간을 앞당겼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이번에는 춘천에서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눈 때문에 자체청백전도 인조잔디에서 치른 강원FC는 홈구장 잔디를 밟지도 못한 채 춘천에서 대전을 맞이했다. 대전 선수가 퇴장 당한 수적 우세를 살리지 못했던 것도, 잔디에서의 실전 훈련이 부족했던 탓이 컸다. “축구선수가 잔디 위에서 훈련을 해야하는데, 오늘도 눈 때문에 체육관에서 훈련이네요”라던 모 선수의 혼잣말이 당시 천재지변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강원FC의 사정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 듯하다.

다음 경기를 위해 포항에 이동했지만 이번에는 포항에서 비가 쏟아졌고, 경기를 마치고 강릉으로 이동하자 다시 강릉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침 그날은 2군리그 개막전을 위해 성남으로 이동하는 날이었고, 영동고속도로 초입에서 앞차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눈길에 갇혀 있던 선수단은 5시간 만에 성남에 도착해 2군리그를 치르기도 했다. 다행히도, 경기 시작 시간을 1시간 늦춰준 성남의 배려 덕분에 휴식을 취한 뒤 몸을 풀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시 강릉에서 다시 홈경기가 열렸다. 역시나 경기 전날부터 눈이 쏟아졌고 강릉시 관계자와 강원FC 직원들까지 그라운드로 나와 저녁 늦게까지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홈경기를 앞두고 홈구장 잔디 한번 못 밟아본 채 역시나, 또다시 경기를 치러야만 했다.

4경기 째 승리 소식이 없던 열악한 상황 속에 거둔 승리는, 자칫하면 연패고리가 될 수 있었던 난제와 패배의식을 동시에 떨쳐버린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1승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한마디로 귀한 승리였다.

또 김영후가 5경기 만에 시즌 데뷔골을 터뜨리며 2년차 징크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는 점에서도 이번 승리는 의미가 깊다. 또 K-리그 국내파들 중에서 처음으로 -물론 스스로에게도-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사자후를 토했다는 건, 자칫하면 슬럼프로 빠질 수 있었던 고비를 기회로 살렸다는 점에서 박수받을만한 결과다.

특히, 전반 47분 터뜨린 첫 번째 골은 K-리그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성공시킨 중거리슛으로 이번 주 비바 K-리그 베스트골 후보에도 올랐다. 탁월한 위치선정과 높은 결정력으로 지난 해 공격포인트 1위에 올랐던 김영후지만 대부분의 득점이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김영후의 이번 중거리슛 성공은 새로운 득점루트를 개척함과 동시에 상대 수비수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이날 터뜨린 3골들 중 가장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이유이기도 하다.

강원FC가 전남전 대승을 통해 얻은 또 다른 수확은 바로 김창희의 발견이다. 김창희는 권순형, 이을용이 부상으로 빠지게 되는 바람에 중앙에 큰 구멍이 생기자 최순호 감독이 긴급수혈한 ‘젊은 피’다. 영남대 주장 출신으로 일찍이 U리그에서 ‘될성부른 싹’으로 통했던 소문 그대로 데뷔전답지 않게 침착하게 중앙에서 공수를 조율하며 ‘소리 없이 강한’ 신예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강원FC는 전남전을 앞두고 중앙, 특히나 수비형미드필더 자원 부족으로 기존 4-2-3-1에서 4-1-4-1로 포메이션을 변경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4-1-4-1 포메이션에서 수비형미드필더는 중앙에서 궂은일을 도맡아서 가장 많이, 또 가장 먼저 뛰어야만 하는 그라운드의 청소부다. 그런 점에서 김창희는 숨은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된 김영후만큼이나 최고 수훈선수임이 틀림없었다.

기존 신인 김준태가 이을용의 대안이 되기에는 2%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아쉬움을 안겼을 때, 전남전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친 김창희의 등장은 마치 아쉬움이 한줄기 희망으로 바꾼 변주곡과도 같았다. 후방에서 중앙과 전방의 선수들의 위치를 직접 지시하고 템포를 조율하는 모습에서는 이을용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했으며, 이는 어느새 이을용의 파트너로 성장한 권순형보다 더 많은 기대를 만들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침체에서 상승으로 가는 전환의 디딤돌이 됐다는 사실에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시즌 희망을 이어가게 됐다는 점에서 전남전은, 그리고 그날 경기에서의 승리는 참으로 특별했다. 설령, 주말 펼쳐질 울산전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격려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발판이 된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