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양궁 개인전 결승이 열린 로즈크리켓 경기장. 단체전에 이어 또다시 금사냥에 나선 기보배와 한국 코치들이 무려 3명이나 있는 멕시코대표팀의 로만 아이다가 결승전에 나섰다. 이번 올림픽부터 세트제로 룰이 바뀌었고 5세트를 마친 스코어는 5-5.
쉽게 갈 줄 알았다. 1세트에서 기보배는 3발 모두 9점을 쏘며 27점을 기록한 반면 로만은 두 번째까지 19점을 쏜 뒤 마지막 발을 6점에 쏘고 말았다. 27-25로 기보배가 1세트를 먼저 챙겼다.
그러나 결승전답게 피말리는 접전이었다. 2세트는 26-26으로 비겼고 두 번 연속 10점을 쏜 로만이 26-29로 3세트를 가져갔다. 세트 스코어는 3-3 동점이 됐다.
4세트는 3연속 10점으로 30점을 기록한 기보배가 22점에 그친 로만을 압도했지만 이어 벌어진 5세트에서는 로만이 기보배를 1점 차로 꺾으며 금메달을 위한 슛오프에 돌입했다. 단 1발로 메달의 색이 달라지는데, 어찌 보면 러시안 룰렛 같기도, 그러다보니 축구에서의 승부차기와도 비슷한 룰인 듯싶었다. 보는 이의 심장마저 쫄깃해지는 느낌이랄까.
기보배가 화살을 날리는 순간, 바람이 불었다. 그녀의 머리가 날릴 정도의 바람. 과녁 앞에서는 그보다 더 심한 강풍이 불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인지 8점을 기록했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두려움은 직면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라고. 로만 역시 8점을 쐈고 기보배의 화살이 로만보다 중앙에 5mm 더 가까웠기에 승리의 여신은 기보배의 손을 잡았다.
과녁 앞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강심장으로 만들기 위해 양궁대표팀은 산으로, 바다로, 그도 모자라 야구장으로, 군부대로, 심지어 공동묘지까지 달려가며 훈련을 했다. 구렁이를 칭칭 감은 채 소리 지르며 화살을 쐈던 기보배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렇지만 이번 개인전에서 기보배는 유독 긴장한 모습이었다. 슈팅 타이밍이 평소보다 길었다. 제한시간에 임박해서 화살을 쏘는 경우가 많았고 원하던 점수가 나오지 않을 때는 얼굴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도 보였다. 심리적 압박감을 극복하지 못한 듯했다. 슛오프에서 8점을 쏘고 로만의 차례가 됐을 때는 고개를 돌린 채 보지 않았다.
영혼까지 증발시킨다는, 그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국내 대표선발전에서는 강한 기보배였지만 유독 메이저대회에서는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난해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32강에서 패했다. 세계랭킹 1위였던 그녀의 충격적인 탈락.
그 후 1년간 화살을 쏠 때마다 패배의 아픈 트라우마가 화살처럼 머리와 가슴을 건드렸을 것이다. 대표팀 내에서도 유독 마음이 여린 기보배였다고 하니. 그 어려움의 시간을 참고 견딘 뒤에 건진 메달이기에 더욱 값져보였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반달 눈웃음만큼이나.
그리고 같은 날 동메달을 딴 여자 펜싱 플뢰레 대표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길옥(강원도청) 전희숙(서울시청) 오하나(성남시청) 남현희(31·성남시청) 이 네 명의 여제들은 2009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아시아선수권 단체전 우승을 기록한 검객 중의 검객이다.
그 중에서도 남현희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대중이 기억하는 남현희는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그때의 남현희일 것이다. 올림픽 은메달의 스포트라이트가 워낙에 커서였지만 2006도하아시안게임에서 남현희는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땄고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개인과 단체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며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아시아선수권에서도 3년 연속 2관왕에 오른 명실 공히 아시아의 최강자였지만 세계무대에서는 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는 종료 4초 전 역전 유효타를 허용해 은메달에 머물렀고 이번 대회에서도 개인전 준결승과 3-4위전에서 연달아 막판 역전을 허용하는 바람에 노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단체전에서도 동메달을 딴 후에서야 남현희는 개인전에서 메달을 따지 못해 죽을 지경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남현희에게는 마지막일 수도 있는 국제대회였다. 2006년 성형파동으로 대표팀에서도 쫓겨나며 자격정지 2년이라는 중징계도 받았지만 2008년 올림픽에서 보란 듯이 은메달을 따냈던, 그래서 더 기특했던 그녀.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예쁘게 꾸미고 다니는 여자운동선수들에게 그럴 시간에 운동이나 더 하라며,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지도자나 팬들을 보는 경우가 그동안 많았다. 그 편견을 남현희가 깨준 것 같아 더 큰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155cm 밖에 되지 않은 키로 머리 하나 큰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 기죽지 않은 플레이를 선보였던 남현희. 치고 빠지는 남현희 특유의 현란한 스텝을 이제는 볼 수 없을지 몰라도 대한민국 펜싱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한국 펜싱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서 2개의 메달을 딴 땅콩검객 남현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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